괴물 - 직설적 제목, 다의적 질문. 2

작가는 하나의 정치적 인물이라 설파한 피카소의 견해에 굳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모든 예술작품은 나름의 정치적 견해를 가진다. 어떠한 정치성도 배제한 순수예술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순수예술의 기치 아래 정치를 거부하는 것그 자체가 역설적으로는 하나의 정치적인 기술이라는 해석은 여전히 가능하다.

영화는 본질적으로 대량소비되는 대중예술이지만, 개개인이 받아들이는 텍스트는 다의적이다. 존 스튜어트 홀의 견해에 따르면, 관객은 감독이 제기한 문제의식과 대면할 때 이를 수용하거나, ‘교섭하거나, 철저히 저항한다스크린과의 대화과정에서 관객들은 장면 장면마다 전체의 맥락을 추출해내는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영화의 궁극적인 메시지를 나름의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이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때 한 편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일견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이데올로기 수용의 과정이다.(버디무비편 부분인용)

영화가 대중예술로서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인식할 때, 생산, 피드백, 정형화의 과정에서 피드백이란 결국 흥행이다. 한 편의 흥행작은 수많은 관객들이 이에 동조하고 공감하였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2006년의 봉준호 감독의 화제작 괴물을 살펴보는 것은 당시 한국사회 전반에 대해 속속들이 살펴볼 수 있는 하나의 좋은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괴물의 내러티브는 단순하다. 직설적인 제목에서 보듯, 한강에 괴물이 출몰하고, 한 소녀가 괴물에게 납치를 당하고, 그 소녀를 구하기 위해 가족원들이 괴물을 쫗는다. 특별할 것 하나 없고, 등장인물들 또한 일상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이 시대의 구성원들이다.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 있는 이 영화에 1000만이 넘는 관객들이 그토록 열렬한 지지를 보내었던 이유는, 언뜻 단순해보이는 내러티브 뒤에서 끊임없이 관객들과 대화를 시도하며 다양한 문제의식에 대한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봉준호 감독만이 구사할 수 있는 수려한 영화언어가 한 몫 했음은 물론이다.

대체적으로 SF물에서 헐리웃 블록버스터들이 따르는 방식(즉 외부의 생명체를 타자화하고 이에 대한 내부 구성원들의 극복과정을 그린)과는 다른 방식으로 봉준호 감독은 영화 속 괴물을 설정한다. 우리 사회 어딘가에 살고 있지만, 쉽사리 인지하지 못하는, 내부의 돌연변이라는 설정을 통해서 봉준호 감독은 실로 무서운 것은 우리가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고정된 사고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들이 너무나 일상적으로 접하는 공간인 한강을 주무대로 설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과정에서 봉준호 감독은 평소 생각하던 일상의 문제의식들을 작품 속에 녹여낸다. 실제 있었던 미군의 포름 알데히드 불법방류 사건을 영화에 차용하고, 이후 존재하지 않는바이러스와 관련한 일련의 소동들을 보여주며 현대 한국 사회에서 미국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던가, 한편으로 이에 대항하는 시위꾼들을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여주면서는 알맹이 없이 껍데기로 전락해버린 문제의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던가 하는 식이다.

영화 속의 국가기능의 부재에 분노하고 대항하는 인물들을 가족이라는 테두리로 묶어놓은 것도 인상적이다. 대체로 헐리웃의 영화들이 남자 주인공 한 명을 히어로로 설정하고, 옆에 보조적 역할을 하는 히로인을 두는 것이 일반적인 것을 감안할 때, 국가기능에 대항하는 최소한의 아나키적 단위로서의 가족은 의미있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은 현상금을 위해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냈던 후배까지도 팔아먹는 시대상황과 맞물려 더욱 더 강한 설득력을 갖게 된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은 봉준호 감독이 우라사와 나오키의 팬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는, 영화의 많은 부분이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에서 모티프를 얻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던 공포의 근원은 익숙한 내부에 있다던가, 국가기능의 부재에 대항하는 최소한의 아나키적 단위로 친구라는 일상적 연대를 내세웠다던가 하는 점은 괴물과 많은 유사점을 갖는다. 비교하면서 보는 것도 많은 재미가 있을 것이다.

전지구적 위기의 극복과정을 묘사하는 일반적 헐리웃 영화와는 달리 영화 괴물의 위기는 한 가족 내부의 문제에 국한된다. 국가는 가족적 연대와는 철저히 구분되고 오히려 이들을 억압하는 부조리한 존재로 묘사되는데, 최후의 무기가 화염병이라던가 쇠파이프라던가 하는 점은 괴물내부의 국가성과 관련해서 볼 때 재미있는 설정이다. 이러한 결에서 괴물은 단순히 괴물과 이에 맞서는 소시민들의 영웅담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괴물이라는 직설적인 제목은 사실 가장 다의적인 제목이 되는 것이며, 이 시대에 던지는 자극적인 질문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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